텐일레븐의 AI 기반 3D설계 솔루션 ‘빌드잇’으로 완성한 불광5구역 재개발 단지의 배치계획 설계안.
기술ㆍ아이디어 등 외부에서 조달
M&A와 달리 ‘동등한 위치’서 접근
적은 비용으로 다수 파트너사 확보
호반ㆍ우미 등 가장 활발하게 투자
업역 경계 넘어 다양한 영역 진출
전문가 “단순한 새싹기업 지원 아닌
위기 극복ㆍ신성장 동력 확보 대안”
호반건설의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법인 플랜에이치벤처스는 2019년말부터 지금까지 모두 15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는 시드(seedㆍ씨앗) 투자다. 최근 현대건설과 호반건설 등이 투자에 나선 AI(인공지능) 기반 3D설계 솔루션회사 텐일레븐(대표 이호영)을 발굴하고 초기 투자와 기술 개발을 지원한 곳도 플랜에이치다. 1년새 텐일레븐의 기업가치는 배 이상 뛰었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에 비해 혁신이 더딘 건설업에도 ‘열린 혁신’으로 불리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건설회사에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을 통해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수직계열화 전략인 인수합병(M&A)과 달리 동등한 위치에서 지분투자로 ‘혈맹’을 맺는 끈끈한 네트워크 전략이다.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다수의 혁신 파트너사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남는 장사’라는 평가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ㆍ중견 건설회사를 중심으로 기술력과 사업성을 두루 갖춘 스타트업 투자가 쇄도하고 있다.
최근 현대건설과 호반건설, 바이브컴퍼니(옛 다음소프트)가 약 20억원을 텐일레븐에 공동 투자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빅5’ 건설사 중 한 곳이 드론 플랫폼 스타트업 엔젤스윙(대표 박원녕)에 지분투자를 했다. 또 대우건설은 드론 제조ㆍ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아스트로엑스(AstroX)에 지분 30%를 투자했다. 중견 주택건설업체인 우미건설도 피데스개발과 손잡고 ‘시공 BIM(건설정보모델링)’ 전문기업인 창소프트아이앤아이에 투자했고, SK건설은 지분투자 대신 흙막이 공사에 최적화된 ‘토공 BIM’ 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창소프트에 제공했다.
스타트업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호반건설과 우미건설의 투자분야는 건설을 넘어선 지 오래다. 호반건설은 △도심형 스마트팜 ‘쎄슬프라이머스’ △안면인식 기반 보안솔루션 ‘CVT’ △디지털트윈 ‘플럭시티’ 등으로 다양하다. 우미건설의 경우에도 △공유주방 ‘고스트키친’ △공유주택 ‘미스터홈즈’ △물류ㆍ유통 택배 ‘달리자’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투자하고 있다. 우미건설은 부동산중개플랫폼 직방이 세운 벤처캐피탈(브리즈인베스트먼트)이 조성한 펀드에도 100억원을 출자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의 스타트업 투자붐에 대해 건설산업 위기론과 연결짓는다. 원한경 플랜에이치 대표는 “건설회사의 스타트업 투자는 단순히 ‘새싹기업을 돕자’가 아니라 차별화된 미래 생존전략을 짜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라며,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성장과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이는 텐일레븐 투자를 통해 건설사들이 기대하는 혁신 모델에서 잘 드러난다. 텐일레븐은 AI 기반 건축 설계 자동화 솔루션 ‘빌드잇(BUILDiT)’으로 불광5구역 재개발사업의 최종 단지 배치계획을 짰다. 빌드잇은 복잡하고 반복적이면서도 서울시의 까다로운 정비사업 가이드라인까지 충족해야 하는 단지 계획설계를 자동화해 수백 개의 설계안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불광5구역의 경우 용적률, 일조량, 세대수 등을 반영한 배치계획만 700개안을 만들어냈다.
현대건설은 텐일레븐 투자를 계기로 ‘AI기반 공동주택 3D 자동설계 시스템’을 공동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주택 브랜드 ‘디에이치’, ‘힐스테이트’의 수주ㆍ영업에 적극 활용하고, 단지 내 태양광 발전 최적 배치 등 친환경 건축물 설계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공장 제작, 현장 조립’ 방식의 모듈러 주택분야에도 이 기술을 확대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건설사(현대건설)와 설계사(현대종합설계), IT사(텐일레븐) 간 기술 융복합이 목표다.
사내 벤처 육성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일환이다. 대기업이 자체 역량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가진 직원들의 창업을 통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는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1호 사내 벤처인 웍스메이트(대표 김세원)와 포스코 사내 벤처 포스큐브(대표 조영화)가 대표적이다. 건설인력 중개 모바일 플랫폼 ‘가다(GADA)’를 서비스하는 웍스메이트는 머신러닝 기반 인력매칭 시스템으로 건설현장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해준다. 이동형 모듈러 플랫폼 기업인 포스큐브는 학교 모듈러 시장을 기반으로 교육환경 개선과 함께 철강 수요 창출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건설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더 이상 팔로워(추격자)가 아닌 크리에이터(창조자)가 돼야 한다”며 “건설사가 부족한 IT 분야를 중심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니즈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
〈ⓒ e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기사입력 2021-01-15 05:00:20 〉